40년전 화이트 크리스마스

40여년전, 남산동 골목의 일본식 목조건물 2층에서 친구는 아틀리에 겸 미술대 지망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 미술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실기연습에 학생들로 아틀리에는 가득 했고 이따금 아틀리에에 찾아가지만 인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목탄 소리만 들렸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실기 연습을 끝낸 남녀 학생들과 친구였던 선생님과 나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낮은 의자와 높은 의자도 상관하지 않고 둘러 앉아 노래도 하고 시도 외우고 명사들의 이름도 외우고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시 크리스마스에는 통행금지가 없었기 때문에 우린 자정이 넘도록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고 나오는데 등 뒤에서 “오빠! 무서워서 혼자 집에갈 수 없으니 데려다 줘요?” 눈송이는 가로등 불빛사이로 솜뭉치처럼 내리고 거리는 벌써 얼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아무 말없이 길을 걷다 소녀의 얼굴을 보니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눈 쌓인 스카프 밑에는 초롱초롱 눈 빛이 보였다.

“손시럽지? 내 오버 주머니에 손 넣어라.” 차가운 손이 따뜻하게 느낄 무렵 조용한 회사 관사에 도착했다. “오빠! 고마워요 조심하여 가세요.” 대문을 열고 소녀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뒤돌아 서서 마음 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눈이 내리거나 비 오는 날이면 소녀 친구와 셋이 만나 음악도 듣고 전시회를 같이 다녔다. 내가 갑자기 군에 입대하면서 아쉽게도 소녀와의 만남은 추억으로 끝이나고 말았다.

40년이란 세월이 흘렸지만 아틀리에의 소녀와 눈에 대한 추억은 나에게는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