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

강동(江洞) 장에 간 도유사 주지(住持) 영감은 의례히 술을 잔뜩 마시고 비틀거다 저녁 늦게서야 돌아 온다는 事實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안(安) 보살이다. 안(安)보살이 도유사에 온지는 며칠되진 않았지만 건너 마을에 홀로 살면서부터 이 절을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도유사 주지영감은 몇 해 전만 하여도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불교(佛敎) 종무(宗務院)을 드나드는 스승이었지만 때아닌 비구승들의 난동(亂動)으로 장삼(長衫)을 걸친 그대로 쫓겨났다. 그 후 운동을 하여 겨우 찾아 든 곳이 바로 인가(人家)와는 이십리 만큼이나 떨어진 깊숙한 산골 조그마한 절에 가징(加徵) 비구승(比丘僧) 주지로 부임되어 왔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착실하고 건실한 비구승으로서의 生을 했으므로 여러 신도들간에 칭찬이 자자했으나 그것도 얼마가지 않아 술과 여자만을 아는 사람(승)으로 환원되어 가자 신도들은 물론 江洞場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번져갔다. 이러고 보니 신도들의 수(數)는 차차 줄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신도들은 여승이 있는 건너 암자로 모두 옮겨갔다.

그뒤 부터는 주지 영감은 밤낮 말한다는 것이 <허참>을 연발 하였고 고개를 숙여서라도 장날은 빼어놓지 않고 부지런히 다녔다. 그때마다 만취되어 올아오기 일쑤인 주지영감은 소위 자기 자신이 생불(生佛)이라고 자부 했다.

또 이 절의 이상한 예는 총명하고 똑똑한 보살이 와 머물면서 주지를 위해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있는 주지 영감이 들어오고 부터는 왠일인지 하루 이틀이면 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살 만큼은 십여일 동안을 무난히 배겨 낸 것도 신기한 일인 것이 다름이 아니라 곰배팔이에 상(上) 얼간이었기 때문이다.

안개가 산 계곡을 완전히 덮어 버리고 이따금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흐린날 이었지만 주지영감은 장날을 잊지 않고 나서면서 상좌(上佐)를 불렀다. 바쁘게 뛰어나오는 상좌 석순(石順)이에게 “석순아! 이 열쇠 가지고 있다가 만약 내가 늦게오게 되면 저녁쌀 내어조례”하고는 언제나 같은 행동으로 안보살을 한번 쳐다 보고는 대체 믿을수 없다는 듯이 <허참>을 내까렸다.

석순이는 주지영감 친구의 아들로서 총명한 두뇌를 가진 열두살 먹을 심술꾸러기 소년이다. 주지영감의 모양이 솔밭사이로 채 사라지기도 前에 안보살은 고사리 뜯으러 산(山)으로 가버리고 석순이혼자만이 조용한 절간의 한적(閑寂)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절 生活에 익숙하지 못한 석순이에게는 허다스럽게 번져가는 잡(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서 뛰어나온 석순이는 의식적(意識的)으로 창고문(倉庫門)을 열었다. 아마 거기에는 먹을것이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가슴이 두근거려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문 가깝게 있는 쌀 뒤주에 손을 넣어 몇홉의 쌀을 주머니 속에 퍼 넣었다. 냄비에 볶아먹을 계획이었다.

볶는 일이 끝이나고 다시 바쁘게 쌀을 주머니에 넣었을때 뜨거운 열이 살갗에 닫는것 같아 쉽게 참을 수는 없으나 하는 수 없었다. 얼굴에는 땀도흘러 내렸다. 이윽해서 안보살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채 그저 콧물만 흘리며 비실비실 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얹고 돌아왔다. 그때서야 그을린 손으로 이마의 땀을 문지르고 탈출(脫出) 할 수 있는 방법(方法)을 생각해낸 석순이는 안보살에게 “나 건너 암자에 갔다 오겠심더”하고는 열쇠를 던져 버리고는 산으로 향하여 트여진 좁은 길을 나섰다. 이외에도 무척 맑아진 날씨는 상쾌했고 이따금 멀리에서는 혹은 가까운데서 새소리며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구미가 댕긴 안보살은 몇 번이고 움츠리다 말고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수다스럽게 널려진 물건들... 무심중 안보살은 선반에 얹혀진 바가지를 내렸다. 그 속에는 늘잊어버리지 못했던 비스킷 네 개가 들어 있었다. 안보살은 알았다. 칠석날 삼돌이 어매가 사다준 것이라고. 그날도 맛보았다. 단 하나였다. 하나를 덥썩 집어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에 얼마동안은 조금 트여진 문틈사이로 시선을 내어보내고 있었다. 가슴도 두근거렸다.

오늘따라 일찍 장에서 돌아온 주지 영감은 먼데서부터 몇 번 인기척이 나도록 재채기를 하였을 때 문이 열리는 소기도 들려 왔지만 마중나올 석순이와 안보살은 존체 나타나질 않았다. 방에 들어온 주지 영감은 재빨리 옷을 벗고 뒷마루에 나왔을때 정신없이 열쇠를 들고 서있는 안보살을 발견했다. 주지영감은 생각하기를 안보살이 수심쩍게 생각 키웠졌다.

그리고 또 핏대도 났다. 얼마전에 들리던문여는 소리도 발굴 시켰다. “허참” 하고는 열쇠를 받아들고 창고를 조사 하여본 결과 쌀뒤주에 써 두었던 글자 유자가 왕(王)자로 문질러져 있었으며 평소 아껴 오던 비스킷은 한알만이 홀로 바가지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안보살 앞에 다가선 주지 영감은 얼굴을 치켜들고 힘껏 안보살의 엉성한 머리를 내리치며 “비스킷 내놔라. 거긴 뭐할라고 들어갔노” 라고 했지만 대꾸할 줄 모르는 안보살은 매를 피하여 도망 가는데 주지 영감은 계속해서 따라 가면서 “갈테면 가보래. 가면 어데까지 갈끼고” 석순이는 법당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몰래 볶아온 쌀을 씹고 있었다.

그때 안보살이 주지영감에게 쫏겨가는 광경도 보이고 뒤따라 가면서 이야기 하는 비스킷 소리도 들려왔다. 석순이는 무언지 모르게 불안스러운 한숨이 튀어 나왔다. 만약 그 비스킷가 내 눈에 보였더라면? 아니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 했지만 어쩐지 매로 쫏겨가는 안보살의 경우가 불쌍하고 미안스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