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頭山 撮影 紀行

寫眞人이면 꼭 가보고 싶은곳이 白頭山이고 백두산에서 하루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成功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긴장되고 조심스러운 준비 기간을 보내다 드디어 촬영길에 올랐다.

07시 40분 出發 대한항공 편으로 大邱를 出發할 때 會員들이 해주는 말이 더 記憶에 남고 부정타지 않고 모두 잘 다녀와야지 다짐하며 들뜬 마음을 달래기가 바쁘게 인천 공항에 내려 延吉行 비행기표를 교부 받고 기자재 신고.확인 밥고 검색대를 빠져나와 비행기에 오르니 그나마 安心이 되었다.

멀리 窓밖에 펼쳐지는 구름위의 내 위치가 꿈속처럼 느껴지고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뜬 기분이 되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이번 사진 촬영 여행의 성공을 마음 속으로 빌기도 하며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되겠다는 覺悟를 갖게 되었다.

12시 05분 연길 공항에 내려 大邱에서 보낸 짐을 찾아 나오니 우리 촬영을 도와줄 孟鐵(한족)씨가 승용차를 가지고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니 마음이 놓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골 친척집에 온 기분 이였고 여기서 백두산 氣象臺까지 4시간 30분이 걸리니까 빨리 가야 된다는 張國鉉 지도위원의 재촉에 따라 곧 출발 하였으며 오염되지 않고 세련 되지 않는 시멘트길을 달리는데 보통 120/km 바짝 緊張이 되었지만 교통량은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이니 故物 승용차의 偉力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달려 조그마한 도시 안도(安圖)에 차를 세우고 우리들이 먹을 차, 생수, 과일, 빵을 구입한 후 조금더 가다가 시냇가에서 잠깐 쉬었는데 흐르는 물이 우리 나라 하수도 물색이고 그 외에는 벼, 콩, 옥수수 밭이 정겹고 우리와 다를것이 없이 田園 景致 그대로 였다. 앞차와 뒤차가 아무리 달려도 백두산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좁은 길만이 길게 느려져가드니 드디어 長白山 白頭山이 란 간판이 선명하게 맞이하니 實感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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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차가 먼저 백두산 기상대에 올라가고 뒤차는 연길로 되돌려 보내고 기다리다 다시 내려온 앞차를 타고 오르는 백두산 길은 잘 정리해 놓았고 꼬불꼬불한 커브길이 위험스러웠으나 好奇心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오른쪽 하늘에서 비치는 日給빛은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것과 같이 화려하고 감격 스러웠지만 카메라는 앞차에 있었으니 눈과 感情만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19시 30분 기상대에 도착하니 어두움이 깔리고 긴 旅行에 지치기라도 한 듯 疲困하고 새로운 始作에 걱정이 되었지만 便安히 잠들 수 있었다.


이튿날 03시 30분에 일어나 04시에 기상대를 출발 곰바위가 있는 곳에 아침 日出 촬영이 시작되는데 마음이 들뜨고 긴장된 상태라 카메라(NOBLEX)사용이 서툴고 자신이 없이 셔터를 마구 눌렀으나 어떤 전경이 들어 왔는지 노출은 맞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침을 간단히 하고 맹철씨와 안내원 催林(한족 총각)을 데리고 천지쪽으로 내려 가는데 어찌나 경사가 심하고 미끄러운지 中心 잡기가 어려워 이리저리 다리에 신경을 쓰다보니 다리에 근육통이 오고 다리힘이 풀리기 시작 했지만 廣闊하게 펼쳐진 野生花 꽃이며 天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필름을 넣고 찍기를 거듭한 결과 점심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고 앞으로 앞으로 평행선(같이 움직임)을 유지 하다보니 天地에 닿았다.

와! 먼저 물한컵 쭉 들이키고 나니 북한 경비병 걱정도 되었지만 孟鐵씨를 믿고 발도 씻고 기념 촬영을 했는데 발이 너무 시려 밖으로 뛰어 나올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그리고 큰 호흡을 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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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올때는 天地 물가를 따라 바윗돌 사이를 돌아오며 전설처럼 들리든 “천지의 물은 솟구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달문을 지나 은하강, 송화강을 따라 내려오니 시멘트 구조물속으로 계단이 되어 있어 위험성은 없었으나 컴컴하고 긴 계단을 내려오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았고 지루했지만 1년평균산의 돌이 굴러 10여명이 死亡했다니 이해가 간다.

그리고 구조물 사이에 나 있는 문사이로 장백 폭포의 장엄한 물소리를 들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장백 폭포를 내려와 피로를 풀겸 溫泉을 하고 우리 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韓食집에서 된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차편으로 기상대로 올라와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곤히 잠들었다.

밤에는 바람과 빗소리가 심하게 窓門을 두드리니 아침에는 정말 사람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불고 하루 종일 기후가 곤두박질 치기 때문에 문쪽으로 눕기가 不安할 정도로 빗물과 모래알이 창문을 새차게 마구 때렸다. (세워둔 차가 곰보가 될정도)

“창문이 넘어지면 어떻게 하지?

이쪽이면 낳을까?”

모두 不安한 마음은 한가지였다.

이튿날 어제와 기후가 같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하여 밑에 내려와 백두산 호랑이 촬영을 하기로 하고 동물원에 가서 순수한 王자가 있는 호랑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차에서 던져주는 닭을 잽싸게 먹어 치우는 호랑이의 순발력에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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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이화에나가 오렌지, 식빵, 과일 등을 구입하고 溫泉과 저녁식사를 하고 기상대로 올라와 내일 날씨를 걱정하며 곤히 잠들었다.

오늘 날씨는 좋아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을 넉넉하게 먹고 부근에서 정신없이 雲海가 오락가락 하는 백두산 천지를 촬영하고 마른땅에 작은 키로 온갖 비바람을 이겨내며 자란 아름다운 野生花도 찍었다.

이름하여 반 타작을 한 샘이다.

해가 지고 달이 뜰때까지 계속하여 촬영을 하고나니 필름 돌리는 손가락이 아파왔다.

다음날 기후가 좋지않아 기상대 부근에서 日出 촬영을 마치고 식사후 천지연 폭포가 내려다 보이는 원경과 백두산 올라오는 길을 간단히 촬영하고 돌아 오는 길의 추위와 바람은 너무나 차가웠고 오후에는 내려와 식사를 하고 小天地 구경을 하고 대우호텔에서 溫泉을 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기상대에 올라 오면서 張지도위원님과 孟鐵씨는 2진 걱정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날씨가 몹시 추웠으나 마지막 日出 촬영을 하려 나갈때는 한겨울에 입는 방한복을 입었으나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카메라를 세워놓고 있기가 두려워 안정된 곳으로 옮겨놓고 바람 막이를 찾아 모였으나 추위는 더했다. 감기와 그을린 피부의 아픔은 추위를 이길 수 없어 내려왔다.

백두산 촬영은 끝났다.    想像과 어려운 촬영의 結果만이 우리를 기쁘게 할 뿐이다.

일주일 동안 끈기 있게 촬영도 하고 우리 韓族들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꽃씨를 심어 가꾸듯이 우리 民族의 强靭한 精神力과 우리의 文化를 소중하게 이어가고 있으며 조국통일을 기원하고 후손들을 훌륭하게 키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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