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명칭에서 '祖'와 '宗'은 어떻게 다른가

김기철 문화부 학술팀장 kichul@chosun.com  2010년 1월 26일

Q: 조선시대 왕의 명칭에서 '祖'와 '宗'은 어떻게 다른가

조선시대 왕의 명칭을 보면 태조·세조처럼 '조'(祖)를 쓰기도 하고, 태종·세종처럼 '종'(宗)을 붙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 '祖'와 '宗'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인천시 중구 독자 임명구씨

A : 개국 군주 또는 국난 치른 왕은 '祖',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은 '宗'

임금이 죽은 뒤 종묘(宗廟)에 신위를 모실 때 정하는 존호(尊號)를 '묘호'(廟號)라고 합니다. 묘호에는 종(宗)과 조(祖), 두 가지가 있는데 생전의 공적을 평가하여 붙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대체로 나라를 처음 일으킨 왕이나 나라의 정통이 중단된 것을 다시 일으킨 왕에게는 '조(祖)'를 썼고,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은 '종(宗)'을 붙였습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를 태조로 칭한 것이 대표적이지요. 반정(反正)을 통해 즉위했거나 재위시에 큰 국난을 치른 임금들도 대체로 조(祖)의 묘호를 가지게 됐습니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홍경래의 난을 치른 순조 등이 그렇고, 반정은 아니지만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도 같은 범주에 들어갑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중종도 인종 초에 '조'로 칭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중종이 성종의 직계로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종'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우세하여 중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조'가 창업이나 중흥을 이룬 왕에게 붙인다는 원칙 때문에, '종'보다 격이 높다는 관념이 은연중에 유행했습니다. 영조와 정조(사진)(정조의 어진)·순조는 본래 영종과 정종·순종이었으나, 고종 때 영조·정조로, 철종 때 순조로 개정한 것입니다. 참고로 신라 왕 가운데 묘호를 쓴 이는 태종 무열왕밖에 없고, 고려 때는 태조 왕건만 조(祖)를 묘호로 썼습니다.

묘호는 원래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열왕 묘호를 태종으로 정하자, 당나라 고종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너희 신라가 해외의 작은 나라로서 태종이란 칭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칭호를 참람하게 썼으니, 그 뜻이 불충하므로 속히 그 칭호를 고치라." '삼국유사'엔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위업을 이뤘기 때문에 태종이라고 썼다고 맞서서 그 뜻을 관철시켰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다른 왕들은 묘호를 못 쓰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고려와 조선시대에 어떻게 이런 묘호를 쓸 수 있었을까요? 고려 전기, 중국은 송·요·금이 서로 각축하면서 절대 패자(覇者)가 없었기에 고려가 황제를 일컬을 수 있는 국제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러나 원나라에 항복한 이후에는 충렬왕·충선왕 등으로 묘호를 쓰지 못했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충실한 제후국임을 표방했으나 때로 중국의 협박을 받아가면서도 묘호만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 제후국이면서도 내부적으로 자존의식을 키우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사대(事大)와 자주(自主)의 교묘한 줄타기'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