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傷 입힌 교통사고는 보험 들어도 처벌한다

헌법재판소 "종합보험 면책조항 위헌" 결정
 
손진석기자 aura@chosun.com  2009년 2월 27일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중상해를 입힌 운전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교통사고특례법(이하 교특법) 조항이 위헌(違憲)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26일 송모씨와 조모씨 등 교통사고 피해자 2명이 "교특법 4조1항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에 위반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7대2로 위헌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헌재는 "위헌결정의 효력이 즉각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법무부와 검찰은 중상해의 범위와 가해자의 처벌수위 등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
법무부는 교특법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교특법 4조1항에 따라 피해자 사망사고와 뺑소니 및 10대 중과실 사고를 제외한 모든 교통사고 가해자는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상호 합의한 것으로 간주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10대 중과실 사고는

▲신호 및 지시위반     ▲중앙선침범위반    ▲속도위반    ▲앞지르기 방법 및 금지위반
▲건널목통과방법위반 ▲횡단보도위반       ▲무면허운전위반    ▲음주운전위반
▲보도침범사고          ▲문을 열고 차량을 주행한 경우 등이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 피해자가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10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으면 가해자와 합의한 것으로 간주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 인명 경시 풍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올 하반기부터는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운전의무위반도 중과실 사고에 포함된다.

헌재 재판부는 "피해자가 중상을 입은 사고의 발생 경위와 피해자의 과실 정도를 따져 운전자에게 정식재판 회부, 벌금형 부과 등 다양한 처분이 가능하고 피해자가 재판에서 진술할 권리를 보장해야 함에도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형사 책임이 없게 한 것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피해자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경우 사망사고보다 불법성이 결코 작지 않은데 면책조항을 그대로 두면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종합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 형사처벌의 유형이 된 경우를 "피해자로 하여금 신체의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로 규정했다

성금한 운전습관을 자제하여 교통사고로부터 고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합시다.

                                   신대우검사소장 : 이  상  도

                      보험업계 "사고 줄어드는 계기" 환영  
                      경찰 "사고 처리 복잡해 혼선 불가피"
                      택시업계 "사고내면 생계 타격" 반발

● 각계 반응

이길성 기자 atticus@chosun.com   2009년 2월 27일

보험사들은 26일 "운전자들의 안전운전 의식을 강화시켜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며 헌재 판결을 반겼다.

사고가 줄면 보험회사들이 지급할 보험금이 적어지고,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음주운전·신호위반·중앙선 침범 등 법이 정한 10대 중대과실만 없으면 피해자가 식물인간이 돼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 운전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경찰과 택시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경찰은 10대 중대과실이 없을 경우 굳이 양쪽의 합의 여부나 피해자의 부상 정도를 살필 필요 없이 '공소권 없음' 의견을 달아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해자가 종합보험 가입자라도 경찰이 양쪽의 합의 여부와 피해자의 부상 정도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사고 처리가 훨씬 복잡해지고 업무량도 크게 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중상해 판단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형법은 중상해를 '생명을 위험하게 한 경우' 혹은 '불구·불치·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라고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일선 경찰들이 혼선을 빚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찰청은 이날 "법무부에서 사건처리 지침이 나올 때까지 부상자가 나온 교통사고는 검찰 송치를 미루도록 일선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택시업계도 반발했다.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운수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판결"이라며 "앞으로는 사고를 내면 당장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돼 생계에 타격이 올 것"이라고 했다.

조합 관계자는 "눈이나 비 오는 날은 사고가 두려워 일부러 쉬는 기사들이 많아져, 손님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택시 기사인 권영성(59)씨는 "업계가 뭉쳐 부당함을 알려야겠지만, 현재 기사 중에는 사업실패자나 신용불량자 등이 많아 조직적인 대응이 힘들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통사고 重傷害 기준 여전히 '아리송'

검찰 "뇌 손상, 사지 절단, 불구 땐 형사처벌" 발표했지만…
법원 판례로 확립되기 전까지 혼란 불가피
종합보험 기피 현상과 '합의금 장사'도 우려

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2009년2월 27일

대검찰청은 종합보험 가입 운전자도 중상해(重傷害)를 입히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새로운 교통사고 처리 지침을 27일 발표했다.

검찰은 '중상해'의 인정 범위를 ▲뇌 또는 주요 장기에 대한 중대한 손상 ▲사지(四肢) 절단 등 신체 중요부분의 상실·중대변형 또는 시각·청각·언어·생식 등 신체 기능의 영구 상실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중증의 정신장애, 하반신 마비 등 완치 가능성이 희박한 중대 질병을 초래한 경우 등 크게 3가지로 정하고, 이 경우에만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했다.
검찰의 이 같은 지침은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가 중상해라고 규정한 형법 258조의 해석에 따른 것이다.

◆ 중상해 인정범위 논란은 계속될 듯

검찰은 헌재 결정 시각인 지난 26일 오후 2시36분 이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만 이 같은 지침을 적용해 처벌하도록 했다. 따라서 26일 오후 2시36분 이후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에게 중상해를 입힌 운전자는 종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피해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고 형사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예전처럼 기소되지 않는다. 치료가 끝나기 전에 중상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은 치료 후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검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조사과정에서 중상해의 범위를 놓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었을 때도 가해자를 정식기소할지, 약식기소 또는 기소유예할지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상당한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중상(重傷)과 중상해는 다르다"며 "완치 기간이 중상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며, 병원진단서는 참고자료의 의미만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치 기간이 길어도 몸이 원상태로 회복되면 중상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검찰 발표 내용은 단순한 업무처리 지침이라서 중상해의 인정 범위와 처벌 수위는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판례로 확립돼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대법원이 중상해로 인정한 경우는 ▲콧등에 길이 2.5㎝, 깊이 0.56㎝의 절단 상처 ▲실명(失明)된 경우 등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치 10주가 넘는 교통사고 상해는 장기간 후유증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디까지 중상해로 정해야 할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합의금 장사' 등 부작용 우려도

이 밖에 종합보험 기피 현상, 생계형 운전자의 전과 증가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병국 건국대 법대 교수는 "택시운전사 등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전과기록이 늘어나고 생계를 접게 될 수도 있다"며 "'몸으로 때운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책임보험만 들고 종합보험을 들지 않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법영 고려대 법대 교수는 "사고가 나면 합의를 미끼로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등 '합의금 장사'를 하는 상황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보험사기나 서민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교통사고를 냈다고 구속되는 경우는 드물고, 형사처벌 대상이 되더라도 법원에 일정액의 공탁금을 내면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는 "경찰이 사고 경위·결과를 수사하기 때문에 당사자 간에 발생하는 보험사기는 줄어들 것"이라며 "그동안 '종합보험 만능주의'에 따른 인명 경시 풍조가 줄어들고 안전 운전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설] '보험 면책' 위헌결정 뒤에 서둘러 보완할 일

2009년 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26일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피해자가 중상해(重傷害)를 당했더라도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운전자가 음주사고, 중앙선 침범 같은 10대 중과실만 범하지 않았으면 자동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것은 피해자의 평등권과 재판진술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작년 한해 교통사고는 18만7669건이었다.
차 1만대당 119건으로 OECD 국가 중 1위였다.
종합보험만 가입해놓으면 교통사고를 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운전자들의 부주의, 난폭 운전을 불러왔다고 지적돼왔다.

운전자들이 사고처리를 보험사에만 맡겨놓고 피해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행태도 '종합보험 면책 조항' 탓이 컸다.

종합보험에 가입했다고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는 제도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관련 조항이 종합보험 가입률을 높여 보험업계를 육성시키려는 목적에 너무 치우쳤다.
그만큼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들 입장에선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위헌결정이 내려지자 검찰과 경찰은 26일 이후 '중상해 사고'에 대해 지침이 마련될 때까지 교통사고 처리를 유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헌재는 중상해에 대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했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 표현을 현실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할지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경우를 형사처벌하고 어떤 경우는 입건(立件)하지 않을지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관련법을 개정해 '중상해'의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법원도 '중상해 교통사고'에 대해 통일된 양형(量刑) 기준을 준비해야 한다.

헌재 결정에 따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우선 병·의원 상해진단서가 가해자의 형사처벌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경우 어떻게 공평하고 일관성 있는 진단서가 발부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부터가 어렵다.

버스·택시기사 같은 생계형 운전자들이나 금고 이상 선고를 받으면 자격이 박탈되는 공무원들은 '보험 면책'이 사라지면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몸이 멀쩡한 사람도 무조건 병원에 입원하고 보는 게 우리 세태의 한면이다.
당국은 피해자측의 무리한 합의금 요구에 따른 분쟁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도 연구해둬야 한다.
하루 평균 514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혼선을 줄일 수 있는 종합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